조선시대 도성 내 3대 빨래터는
삼청동 빨래터, 원서동 빨래터, 청계천이었다.
이 중에서 창덕궁 후원 뒤에 있는 원서동 빨래터는
담장 아래로 흘러나오는 북영천에 궁궐의 쌀 씻은 물이 섞여서
빨래가 잘 된다 하여 최고로 여겼다.
1. 원서동 빨래터
2. 삼청동 빨래터
3. 명륜동 빨래터
신선이 노닐만큼 풍광 좋고 물이 맑은 삼청동은
1960년대 말 지금의 모습으로 복개되기 전까지
서울에서 가장 크고 깊은 계곡인 삼청동천에서
내려온 물길은 민가의 빨래터였다.
성균관과 창경궁 담장 사이에 끼어 있는 넓지 않은
명륜동 빨래터는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성균관 기준으로 오른쪽은 동반촌, 왼쪽이 서반촌으로 조선시대 성균관 노비들이 살던 반촌이다.
창경궁을 지나 성균관 쪽으로 내려오는 물길에
명륜동 빨래터가 있다.
거창한 건축물도 웅장한 예술품도 좋지만
사람이 살며 생활하는 일상의 한 단편을 볼 수 있는 곳,
빨래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