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탑골공원
나에겐 ‘파고다공원’이란 명칭이 더 익숙한 ‘탑골공원’, 3.1운동때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던 팔각정에 모여 설명을 듣는다.
파고다(Pagada)는 포루투갈어로 옛 지명 이름 탑동(탑골)을 따서 탑골공원으로 명칭을 개정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이곳에 흥복사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세조의 왕명으로 이 자리에 원각사가 중건되었고(보수하거나 고쳐 지음), ‘원각사지 10층 석탑’이 지어졌다. 원각사지 10층 석탑은 대리석 재질로 만들어 탑이 하얗게 보여 ‘백탑’이라고도 불렸고, 그래서 동네 주변을 ‘백탑동네’로 불렀음.
연산군 시절 억불정책으로 원각사는 없어지고 10층 석탑과 대원각사비만 남아 있는데, 원래는 10층이 아니라13층 석탑이었는데 임진왜란 때 윗층이 소실되어 현재 10층 석탑으로 남아 있다. 30톤짜리 구리로 된 종도 있었는데 이것도 소실됨.
파고다 공원은 우리나라 최초 도시공원이란다.
광장vs공원의 차이는 공원은 녹지조성이 중요한 요소^^
이곳은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폐쇄 공간이었는데, 고종 때 근대도시화 과정에서 수도 중심에 공원 조성을 계획하고 영국 건축가 설계에 의해 공원이 조성되었다.
외국사절단이 꼭 다녀가는 필수 코스였으며, 일제강점기 시기에는 일본식 정자가 있었고, 최초의 찻집이 들어서기도 했단다.
조선시대에는 원각사 사찰, 일제강점기에는 문화 공간으로, 근대화 시절에는 공원으로 기능과 역할이 변모되어 왔다.
이전에 공원 한쪽에 라디오방송 송출 스피커가 놓여 있었단다.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에서 100년 전 우리 문화를 엿볼 수 있다하여 인터넷을 통해 살펴보니 도저히 서양사람 그림같지가 않다.
탑골공원의 삼일문은 원래의 문이 아니라 중수(낡은 것 보수)한 것.
대한제국시대 삼일문은 현재 서울법대(혜화동)에 있는 서울사범대초등학교 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삼일문에 박정희대통령 친필이었는데2001년 훼손됨.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공원의 테두리에 2층 아케이드(파고다 아케이드)가 건설되어 악기상, 양장점 등 기호물품을 파는 상가로 인기가 있었는데, 독립운동 사적지인 탑골공원을 훼손한다는 시민들의 지적으로 철거하고 지금의 돌담으로 중수하였다.
삼일문, 삼일대로, 삼일빌딩(옛 빌딩 김수근 건축, 63빌딩 이전 가장 높은 빌딩이었음)…
탑골공원이 유튜브에서 mz세대 노래로 유명하다 하여 들어보니90년대 댄스곡들을 미디음악으로 신나게 편집했는데, 마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틀어주던 테이프 곡들이 연상된다.
지금 탑골공원 노래를 틀어 놓고 어깨를 들썩이며 글을 쓰고 있다.^^
2. 청계천
삼일빌딩 있는 곳에서 청계천으로 내려와 시청 방향으로 물길따라 걷기 시작했다. 벽면에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가 쭉 이어져 그려져 있다.
맑은 청계천 물에 커다란 물고기들이, 왜가리가 우리를 반겨준다. 더위를 피해 다리 그늘 밑에서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도 반갑다.
광교(광통교)에서 설명을 듣는다.
조선시대 가장 큰 다리였는데 큰 비로 다리가 유실되어 태종 이방뭔 모친 강씨의 능인 정릉의 석물을 가져와 광통교 석교로 만들었다 한다. 화강암인 석물에 새겨진 정교한 조각이 멋스럽다. 다리를 받치고 있는 석물 기둥이 45도 정도 틀어서 세운 것은 다리 보존을 위해 물길 힘을 빼기 위한 지혜란다.
조선시대 다리밟기 풍습을 광통교에 와서 했다고..
청계천 주변 고물상들이 즐비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젠 그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언제 복개했냐는 듯 깨끗하고 멋진 정취를 만들어 주며 서울 중심 한복판을 유유히 흐르고 있는 청계천이 당당하다.
<오래된 서울> 김창희저 추천, 담주까지 읽고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