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걸 좋아한다.
발길 가는 대로 걸으며 주변을 보는 게 즐겁다. 시간의 흐름이 보이는 정형화되지 않은 정겨운 거리의 모습을 좋아한다. 작은 동네마다 각기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랑스럽다. 탐험가가 된 듯, 골몰길을 누비며 그날그날 나의 기분에 따라 또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재미이다. 그래서 우리 지역을 걷는 게 난 좋다.
꽤 많은 곳을 둘러보았다고 생각했다. 많은 곳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충신동은 나의 발길이 처음 닿은 새로운 곳이었다. 서울 한복판에 내가 전혀 모르는 동네가 존재하고 있음에 놀랐다. 그랬다. 이전까지 내 발길이 닿았던 곳들은 아직까지 예전의 정취가 남아있지만, 요즘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요소가 더해진, 그래서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곳들이었다. 어쩌면 나는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으로 이 시대의 힙한 느낌을 추구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처음 와본 충신동은 달랐다. 어떤 감정을 갖는 게 옳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어쩐지 즉각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기가 조심스러웠다. 이 양가적인 감정에 붙일 단어를 고르는 것조차 어렵게 느껴졌다. 충신동 골목길은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그리고 여전히 멈춰있다. 분명, 요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가졌다. 하지만 이곳은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감각의 요소를 덧붙이진 못했기 때문에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그건 이곳이 누군가의 생활의 현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충신동을 접한 나의 마음은 쓸쓸하고 복잡했다.
하지만 다시 본 충신동은 쓸쓸한 풍경 속에 흥미로운 요소가 가득했다. 층위가 다른 언덕위에 미로처럼 엮인 골목들은 익숙한 시선을 달리하여 색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재미가 있었다. 굽이치듯 이어지는 좁디좁은 골목길은 종이접기처럼 보이며 상상력을 자극했다. 특히, 두 번째 동행촬영 때에는 날씨마저 이 공간의 매력을 배가시켰다. 골목길 사이로 보이는 완벽히 아름다운 파란 조각하늘, 고개를 들어 바라본 비정형적인 건물과 하늘의 접점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라인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또한, 공간이 주는 구조적인 매력에 사람들의 생활 정취와 현실적인 감각들이 더해져있다. 그곳의 컬러, 거주하는 이들만이 의미를 알 수 있을 생활의 흔적들이 이 골목길을 더욱 특색있고 생기 넘치게 만들고 있다.
쓸쓸하지만, 생동감이 넘치는 곳. 복잡한 미로같음 골목 안에 자기 이야기를 그대로 담고 있는 곳. 그래서 어떠한 평가도 조심스러운 곳이 바로 충신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섣부른 판단은 미루어두고 현재 있는 그대로, 혹시 변화할 모습 그대로 이곳의 모습을 기억에 담아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