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문+서촌_2023.7.20
풍경
정영림
부암동
2023-07-20
<오래된 서울> 공저자 김창희선생님과 함께 한 서촌 산책. 창의문(자하문)에서 시작됐다.

*창의문
: 창의문은 북대문과 서대문 사이의 문으로, 한양의 성문인 사대문(흥인지문(동), 돈의문(서), 숭례문(남), 숙정문(북))과 사소문(혜화문(동), 소의문(서), 광희문(남), 창의문(북)) 중에서 사소문 중 하나이다.
창의문이 고개의 높은 위치에 위치한 것은 고려시대부터 개성과 서울 다니는 루트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창의문은 개성에서 홍제천을 따라 옥천암 지나 고개 넘어 남경으로 행궁들어가는 입구였을 것. 즉,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문!으로 천년의 길!). 또한 원형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문으로 이성계 구조물의 의미가 있다.
세검정 영역은 고려시대부터 불교의 중요 지역이었다.
장의사 당간지주가 세검정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다하니 다음에 보러 가야겠다.


자하문 ->백운동 -> 청풍계 -> 옥류동으로 가는 여정


*백운동
: 겸제 정선의 진경산수화 중 <백운동>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듣고(그림의 선비의 위치는 경기상고와 몰몬교회 갈라지는 곳에서 그린 것으로 추정됨), 인왕산자락길을 따라 윤동주문학관, 청운문학도서관을 지나 인왕산숲길로 접어들어 백운동 지역을 살펴본다. 작은 산줄기를 경계로 지형 달라지는 것을 확인. 백운’동’은 백운‘계곡’ 뜻함.

*백운장
: 대한제국 법무대신을 지낸 김가진이 백운장이라는 정자를 세워 이곳에서 활동하였고 ‘백운동천’이라는 글씨를 바위에 세겨 놓았다. 남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위치에 있으며, 비원 중수하고 남은 재목을 고종에게 하사받아 백운장을 지었다. (백운장과 백운동천 각자 바위 가는 길은 경기상고 쪽에서 출발해야 갈수 있음). 김가진은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사망한 유일한 인물.


*청풍계(청풍계곡)
: 청운동 52번지 일대의 골짜기. 굴곡 많고 바람 많으며 이곳으로 피서 많이 옴
서울 사대문 안에서 ‘계’ 자 붙는 유일 지역으로, 세도가 안동 김씨들 중 김상용 계열이 살던 지역. 김상용은 청풍계에 별장을 지었고, 동생 김상헌은 궁정동에 살았음.


옥류동 계곡 일대는 장동(안동) 김씨와 중인들이 모여 살았다.

*옥류동의 청휘각
: 김수항이 지은 정자인데, 안동 김씨 소유였던 것을 여흥 민씨가 뺏음
남산 타워가 바로 바라보인다. 위치가 기가막힌다.

*옥류동 각자 바위
: 바위에 ‘옥류동’이라 새긴 글자가 있음. 송시열의 글씨로 알려짐.
현재 주변은 재개발 진행으로 어수선하다.

*가재우물터
: 현재 빌라 건물 아래 창살 안에 우물이 있다고 함.
장동 김씨인 좌의정 김상헌이 어머니 눈병을 고치기 위해 옥류동 샘물을 찾아 갔고, 그의 손자 영의정 김수항이 이곳에 집을 지었다고 한다.

*천수경 집터
: 옥류동 계곡에 지은 천수경 시인의 집. 김정희의 글씨가 마당 벽에 새겨져 있었다고 함. 이후 윤덕영이 이곳을 사들여 ‘벽수산장’ 저택을 지음. 현재 담장과 대문이 없고 마당에 잡초가 무성한 상태였다.

*서용택 가옥(윤덕영 살림집)
윤덕영 첩의 집, 한일 절충식 한옥.
한때 윤비의 생가로 알려져 남산 한옥마을에 재현하기도 하였음.
지금은 폐가 분위기가 나지만 사진에 멋지게 담겨 여러 컷 찍어본다.

*벽수산장 터
옥류동 계곡 = 송석원 = 옥인동 47번지
옥인동에 있는 윤덕영의 아방궁이라 불리고 있는 벽수산장. 불타없어졌지만 흔적이 남아있음.
2만평 규모(지상3층,지하1층)의 별장으로 경복궁이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 지음.
윤덕영의 동생 윤택영의 딸이 순정효황후. 경술국치에 지대한 공을 세웠고, 황후의 치마속 옥새를 강제로 빼내고 고종을 독살시킨 놈.
(옥인동의 박노수 가옥(박노수미술관)은 윤덕영이 그의 딸에게 준 집)

*세종아파트
: 월북 민족운동가인 이여성(본명 이명건)의 집터


자하문에서 출발한 서촌 기행의 대장정을 세종아파트에서 마무리했다.
산모기 떼의 습격으로 반바지를 입었던 나의 다리는 누군가의 말대로 ‘헌 다리’가 되었고, 가려움으로 김창희 선생님의 설명에 집중하기 어려웠지만, 많은 스토리를 갖고 있는 서촌에 대해 훗날 다시 기억하며 탐방해봐야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