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마을에 남겨진 문화예술인들의 자취를 찾아서
문화·예술·역사
국혜원
서촌
2023-10-20
코스 : 이상의집→구본웅 집터→청전 이상범 가옥→박노수미술관→윤동주 하숙집 터

주제 : 학창시절 친근하게 들었던, 그러나 막연하게 알던 그들의 흔적을 살펴보기

<이상의집>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이며 1910년 9월 23일 종로 사직동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1937년 4월 17일 도쿄에서 27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그는 세 살 때 아들이 없었던 몰락한 양반인 큰아버지에게 입양되었고 그때부터 어린 시절과 초중고 시절, 총독부의 건축과 기사로 근무하던 1933년 스물 두 해를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이상은 그의 주요 분야인 건축과 문학뿐 아니라 그림과 외국어 등 다양한 분야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조선 미술 전람회에 출품해 입선하기도 했고 잡지의 표지 등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보는 이 집은 큰아버지 사후에 여러 필지로 나뉘어져 그 위에 여러 집이 지어졌기 때문에 그 시절의 온전한 모습을 보실 수는 없어 아쉽지만 둘러보시며 천재 시인 이상의 숨결과 흔적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구본웅 집터>
이곳은 한국 야수파의 시조라할 수 있는 화가 구본웅의 집터입니다. 여러 필지로 나뉘어져 건물이 들어서 있어 그 흔적을 찾기 어렵습니다.

구본웅은 1906년 3월 7일 태어났으며 생후 4개월만에 어머니가 사망하여 동네에 젖동냥을 받으며 허약 체질로 지내다가 두 살 무렵 척추를 다쳐 평생 곱사등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구본웅은 삼촌 구자옥의 영향으로 그림과 조각을 배웠고 우리 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인 춘곡 고회동에게 서양화를 배웠습니다. 후에 일본에서 미술 유학하였고 돌아와 이과전, 독립전등에 출품하였습니다.

이상과 구본웅은 신명보통학교 동창이고 절친입니다. 구본웅이 4살 많지만 몸이 약한 탓에 다니다말다 하는 바람에 졸업은 같은 해에 했다고 합니다.

<청전 이상범 가옥>
청전 이상범은 한국 회화사에서 근현대 수묵 산수화가로 유명합니다. 그는 스승 안중식에게 배웠고 1950년대에는 ‘청전양식’이라는 독창적인 본인의 화풍을 만들었습니다.

이상범은 1942년 이 가옥을 매입하여 작고한 1972년까지 가족 3대가 함께 살았습니다. 이 가옥은 ㄱ자 안채와 ㅡ자 행랑채로 이뤄진 근대 도시 한옥으로 1929년 지어졌습니다. 특히 입구 쪽에는 도시 한옥에서는 볼 수 없는 부엌의 찬마루가 있습니다. 찬마루 위에는 ‘누하동천’ 당호 현판이 걸려 있는데요. ‘누하동의 선경’이라는 뜻으로 이상범이 이 집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박노수미술관>
남정 박노수는 전통적인 수목화에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시켜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하여 전통 속에서 현대적 미감을 표현해낸 작가로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이 가옥은 1937년 건축가 박길룡에 의해 지어졌습니다. 박노수 화백은 이 집에서 40여년을 살았고 사후에 이 집과 작품을 기증하여 지금의 구립 박노수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가옥은 한식과 양식의 절충 건축기법을 보여줍니다. 1층은 온돌과 마루, 2층은 마루방 구조이며 3개의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장식적인 요소와 단순함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1년 서울시 문화재 자료 1호로 등록되었습니다.

<윤동주 하숙집 터>
연희전문학교에 재학중이던 윤동주는 자신이 존경하는 소설가 김송이 살던 이 집에서 1941년 4월부터 9월까지 하숙 생활을 했습니다. “별 헤는 밤“, “자화상“, “또 다른 고향"등 그의 대표작품들이 이 시기에 쓰여졌습니다.

윤동주는 아침 식사 전 하숙집을 나와 인왕산 중턱까지 걸어 산책을 하고 수성동 계곡 물에 세수를 하고 방으로 돌아와 청소를 끝내고 조반을 마친 후 학교에 갔다고 합니다.

윤동주가 머물던 당시에는 기와로 된 한옥이었으나 현재 그 흔적은 남아있지 않아 아쉽습니다.